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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2014. 2. 27. 09:55<변호인>을 보고 나서.
음.. 워낙 나가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26일 IPTV에서 서비스를 해주고 인터넷에서 풀리는 때가 돼서야 드디어 변호인을 접하게 되었다. 한창 영화관을 데우고 있을 때 친구가 꼭 보라는 말을 했었지만 알겠다고만 하고 보러 가진 않았다. 그리고 보러 가지 않은 건 참 다행이었다.
나는 변호인의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를 처음 본다. 유명하다고들 하는데 처음 본다. 그래서 프로필을 찾아보았더니, 괴물은 본 적이 있는데... 그래도 기억은 안 난다. 궁금하다. 이 사람은 원래 이런 말투를 쓰는가? 너무도 똑같다. 그래서 계속 상상이 된다. 별사건도 없었는데 그저 눈물이 난다. 나는 남들 앞에서 이렇게 우는 걸 보이고 싶진 않다.
내가 바란 사상과 평행을 달리지도, 크게 다르지도 않았지만 모두의 기대보단 실망스러웠으며 그 기대 여부와 관계된 각종 지지집단의 힐난에 빠져 살았던 대통령. 하지만 가장 인간답던 대통령. 나는 정치는 몰랐지만, 그가 떠남을 슬퍼했다. 그리고 지금 그를 떠올리며 운다.
그리고.. 영화보다 심각한 당시 현실에 대해 개탄하면서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작금에 다시 실망한다. 분명히 이 길을 걸어가면 된다고들 하는데 막상 그래보니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나라는, 내가 얼마 살진 않았지만, 대충 30년 안팎으로 살아보니까, 하루라도 빨리 떠야지 안그러면 사람답게 살기 힘들 것 같다.
— 트위터 모 분께서 하신 말. 1February 25, 2014
오늘 꿈에선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피난을 가고 있었고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에 대해 어떤 대비를 할 수 있을까 문득 떠올렸다. 다시 일어날 일 없다며 고이 접어두었지만, 그 '극단적인 상황'은 영화에서 보듯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피난을 가는 이유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 정녕 다를 것인가?
어제자 한겨레 칼럼에선 다음과 같이 말하더라.
변호인이 ‘천만 영화’가 되어도 자본은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정치적 민주화와 ‘과거의’ 인권 문제는 얼마든지 시장 속에서 유통시킬 수 있을 만큼 자본은 이제 충분히 관대하다. 시민의 울분조차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장 속에서 벌어지는 현재 진행형인 죽음을 알리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그들을 불편하게 한다. 권력이 선호하는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Source : 한겨레
자본의 관대함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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