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2015. 1. 23. 00:49

일본 여행 0115 (24) : 07일 - 기다림

※ 2015년 1월 일본 여행에 관한 글들은 여기에 모여 목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호텔 산타가스 우에노점 (ホテルサンターガス上野店) → 메이지 신궁 (明治神宮) → 신주쿠 공원 (新宿御苑) → 도쿄 도청 (東京都庁) → 지브리 미술관 (三鷹の森ジブリ美術館) → 아키하바라 (秋葉原) → 호텔 산타가스 우에노점 (ホテルサンターガス上野店)


Tokyo Magnitude 8.0 (10)
우리는 신주쿠역 (JR新宿駅)으로 갔다. © Tokyo Magnitude 8.0.


가는 길은 시리에게 물어봤더니 네비게이션으로 안내해주더라. 시간은 넉넉하진 않지만 그렇게 급할 건 없었다. 글과 사진으로만 배웠지만 역시나 신주쿠역은 몹시 복잡했다. 사진처럼 사람이 없는 곳이 아니었다. 도쿄역 100주년 스이카 카드를 판다고 시끄러웠는데 정작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역은 신주쿠역이다.


이곳의 츄오선 (中央線)과 츄오·소부완행선 (中央・総武緩行線)[각주:1]의 움직임은 철도 초보에게 너무 충격적이고 가혹한데 일단 플랫폼이 미친 듯이 많고 이용객도 세계에서 제일 많은 건 둘째 쳐도 츄오선의 보통 급이 츄오·소부완행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츄오선의 보통급이나 각역정차에 해당하는 열차가 츄오·소부완행선같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일단 그렇다.


역에 어떤 사람에게 미타카 방면 (三鷹方面)으로 가는 열차가 뭐냐고 물어봤는데 친절히 츄오·소부완행선을 소개해주더라. 시벌.[각주:2] 근데 그걸 타러 갔다. 가서 곧 온다는 것들의 시간표를 봤더니 글로만 배운 나는 머리가 하얘졌다. 미타카까지라고 적혀있는 건 미타카역 (JR三鷹駅)까지고 나카노라고 적혀있는 건 나카노역 (JR中野駅)임이 당연한데 어쨌든 머리가 하얘진 상태였다.


E231계 900번대 (E231系900番台) 차량이다.


금방 미타카역 방면의 각역정차 편이 왔고 나는 친구를 따라 탔...


분명 내 두 발은 플랫폼에서 떨어졌고 한 발은 열차에 닿아 있는데 나는 더 들어가지 못했다. 문에 끼었다. 시발. 나는 들어가려고 애를 썼다. 분명 교토에서 한큐 (阪急電鉄)가 문을 닫으려 할 때 내가 뛰어들었건만 먼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관사는 문을 열었다. 근데 여기는 문을 안 연다. 나는 발버둥치다 포기했다.


먼저 탄 친구와 허망하게 서로를 바라봤다. 열차는 갔고 역에 남은 건 나 혼자였다.


The_Garden_of_Words (14)
이것도 위와 같은 차량. © The Garden of Words.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옆에 아저씨와 할아버지 경계에 있으신 분께 물어봤다. 소니 폰에 kana 자판을 쓰시는 분이었는데 검색하는 게 오래 걸렸다. 만약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당장 다른 플랫폼으로 가서 츄오선을 타라고 말했겠지.. ㅠㅠ 근데 그런 일은 없었고 곧 오는 나카노방면을 타서 나카노에서 갈아타라고 하시더라. (...) 인자하셔서 곧이곧대로 믿고 탔다.


다음 역을 내리진 않고 살펴봤는데 친구는 없었다. 목적지까지 갔다고 생각해서 이 충격적인 상황을 친구B 그리고 친구C와 공유했다. 문제는 일본어를 할 수 없는 친구A가 와이파이도 없이 버려졌다는 것이다. 역에 남았다는 사실로 보면 버려진 건 난데....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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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E231계 500번대 (E231系500番台) 차량. © The Garden of Words.


어느새 도움을 주신 할아버지는 내리며 인자한 눈빛 미소를 다시 한번 쏘신 후 사라지셨고 나는 친구B 그리고 친구C와 떠들다 나카노에서 내리질 않았다. (!?!) 언제까지나 서있으리라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기관사가 교대를 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망할 열차는 다시 신주쿠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ㅋㅋㅋㅋ 그래서 다음 역에서 바로 내려 다시 나카노로 갔다.


솔직히 직결운행이나 주말에 안 서는 것.. 완급결합 그리고 요금….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 철도는 미친 것 같다. 어렵고 비싸서 충격적이다.


하, 암튼 삽질을 계속하는 바람에 특급쾌속으로 직선 구간을 느껴보지 못했다. ㅠㅠ 어쨌든 츄오선 (쾌속) 타고 겨우 미타카역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14시. 대충 눈으로 이리저리 둘러본 뒤 일단 뛰쳐나갔다. 마음만 앞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왜냐하면 돈 아끼려고 계획서에도 '걷는다'고 적어놨기 때문. (...) 그래서 걸어야 했다. 시발. 걸어야 하는데 길도 제대로 모르는 와중에 어떻게 걸어가? 어떻게 시간에 맞춰.


그래도 다리는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저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급했던 내가 사진 찍고 있을 리가 없잖아. 친구가 찍은 거다.


저런 버스가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오자마자 보였다. 그래서 일단 탔다. 버스 기사한테 물었다. 이거 타면 지브리 갑네까. 기사가 당황하며 어딘가를 가리키며 저길 가라고 했다. 헠헠 감사합니다. 내립니다. 달려갔다. 지브리 미술관 가는 버스 타는 곳이라고 적혀있었다. 셔틀버스길래 무료인 줄 알았는데 시발 이거 비싸잖아. 일단 왕복이 싸서 320엔 주고 표를 뽑았다. 그냥 스이카 찍어도 되긴 한데 비싸서..


금방 미술관에 도착했고 20분 정도 남겼다. 비는 계속 왔고 그곳에 친구는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15분쯤 기다리다가 여성 직원분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래서 친구를 기다리는 중인데 친구가 늦게 와도 들어갈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고 했다. 오면 알려달라고. 그래서 마음놓고 (??) 기다렸다. 어느새 그 직원이 입구에서 사라지고 교대가 등장했다. 마음 싱숭생숭 막 불안해졌다. 아, 그 분 계셔야 들어갈 텐데. 친구는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일본까지 와서 김치국은 정말 맛있었다.



14시 30분이 지나니 심심해서 미술관 사진이나 찍었다. 이건 참 잘한 것 같다. 마찬가지로 입장하는 사람이 없어서 심심해진 교대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또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에~ 그럼 못 들어갈 텐데~" 잠시 얼었지만 (사실 말하면서도 얼음) "어어어..... 다른 직원분께서 된다고 했는데……." "농담임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한 시간쯤 기다리면서 놀았다. 물론 들어가진 않았고 계속 직원이랑 대화하면서 놀았다. 좀 실례지만 알바인지 물었는데 정직원이라고. (...) 비가 많이 왔는데 버스가 올 때마다 오지 않을 때도 비 맞으면서 오나 안 오나 살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직원들도 나왔고 입장쪽 관리하는 6명의 직원과 다 친해졌다. 한 명은 농땡이[각주:3]치면서 한국의 음력 생일과 만 나이 그리고 학기제에 대해 물었다.


표 안 가져왔는데 들여보내달라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대체 왜 오는 거지. ㅋㅋㅋㅋ 그중 나이대도 비슷해 보이는 한국인 4명도 같은 사례였는데 무슨 편의점에서 카드가 안 먹혀서 안 됐다고;; 카드 결제가 안 되는 편의점이 어딨나. 내가 현장에서 샀는데.


계속 밖에 있으니 안 되어 보였는지 손난로 두 개도 받았다. 크흑. 2시간이 넘어가자 이건 기록이라는 말도 나왔다. 흑. 버스가 한 대 올 때마다 직원들도 "친구 올까나.." "오겠지?"라는 말로 날 다독였다. 크흡. 텔레그램에 있는 친구B와 친구C에게 알려서 스카이프로 친구A에게 전화해봤지만 될 리가 없었다.


대화를 하다 폰을 확인하니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떻게 연락한 거지. 설마 호텔에 간 건가. 직원들도 농담으로 호텔에 가진 않겠지..라던데 (...) 근데 진짜 호텔이었다. 그걸 받고서 친구에게 설명은 나중에 해도 되니까 빨리 오라고 했다. 그리고 화풀이는 직원들에게... "목적지로 오는 게 당연하잖아여 ㅠㅠ"라고. 다들 공감하면서 웃는데 그거랑 내 처지가 웃겼다. 근데 뒷 일정도 남아있는데 당연히 목적지로 와야지. 아니면 미타카역 개찰구 바로 앞이라든가.


친구랑 연락이 됐다고 하니까 직원들이 자신들 일처럼 기뻐했다. 하긴 3시간 가까이 같이 지냈는데 자신들 일이 아니라곤.... (??) 16시 반이 되어도 오지 않자 들어가서 먼저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나는 더 기다린다고 했고 그들은 갑자기 협상을 했다. "그럼 17시까지 안 오면 들어가는 걸로!" 나는 그러겠다고 했고 계속 기다렸다.


직원들 덕분에 버스 배차시간도 알게 되었다. 10분이다. 먼저 들어가고 친구는 들여보내줄 테니 인상착의를 말하라고 ㅋㅋㅋㅋ 조르길래 적어줬다. 마침 안개 자욱한 배경으로 찍한 도쿄 도청 (東京都庁) 사진이 있어서 그걸 보여줬다. 40분쯤 되었나, 친구 인상착의를 가진 사람이 버스에서 내리는 걸 봤다. 하..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온 것 같아요!"라고 활기차게 말하곤 버스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었다. (...) 시벌ㅋㅋㅋㅋㅋㅋ


여기랑 입구를 내가 몇 번 왔다갔다했는지..


일정상 15시 반에 지브리 퇴장인데 (...) 지금은 16시 45분이다. 그리고 결국 친구가 진짜 도착했다. ㅋㅋㅋㅋ 직원들이 왜 늦게 왔냐고 빨리 빨리좀 다니라고 웃으며 말을 건냈다. 당연히 친구는 못 알아들음 ㅋㅋㅋ 그리고 갈 때 사진 같이 찍자고 했다. 우린 드디어 들어간다.


지브리는 예약 과정부터 해서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런 재밌는 일이 계속 벌어졌는데도 끝은 메데타시여서 계속 만족스러운 여행이다.


지브리 내부 사진은 블로그에서 거의 발견할 수가 없는데 그 이유가 정말 궁금했다. 한국인은 아무리 찍지 말라고 해도 다 찍어오게 되어 있는데 말이야. 직원들과 친목친목했지만 그거랑 찍는 일은 다른 거야 자기암시를 한 끝에 멘탈은 단련되었고 사진 찍을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각오하고 미술관에 들어갔는데 이게 뭐야.


각 방마다 안내원이 한 명씩 붙어있다. 말이 안내원이지 사실 그들이 하는 일은 없다. 두리번거리는 걸로 보아 이것은 사진기 포착 레이더가 틀림없다. 너무 무셔워서 단련된 어글리 멘탈은 어디 가고 순종적인 자세로 관람하게 되었다. (...) 입장 관리도 정직원이라면 안쪽에 있는 사람이 아닐 이유가 없다.[각주:4] 하긴 입장료가 1,000엔이나 하는데 비정규직은 없어야겠지....ㅋㅋㅋ


한 바퀴를 돌았는데 뭐가 뭔지 뭔가 텅 빈 것 같은 미술관이 아닌가. 뭔가 이상해서 꼼꼼히 다시 보기로 했다. 과연 아까 보지 못한 것도 다시 보였고 아까 봤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찾던 마루 밑 아리에티 (이하 아리에티) 원화 같은 것도 보였다. 우리의 티켓은 분명 14시 입장이었지만 거의 5시에 입장했는데 18시 폐관 시간이 다가오니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그래서 직원들이 퀴즈도 내주더라. 근데 맞추진 못함. 흑흑.


그리고 또 특이한 점 중 하나가 호두까기 인형 같은 걸 무려 방 두 개를 써서 전시해놨던데 내가 이런 걸 지브리에서 만든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미야자키 하야오가 좋아하는 걸 전시해놨다고. (...) ........ 가보면 알겠지만 미술관이 큰 것도 아닌데 방을 두 개나 써서.... 아주 사유물이구먼! 맞는 사실인데 왜 그래.


그렇게 보고 있는데 아까 친목했던 직원 한 명이 급하게 달려와서는 영화 마지막 상영인데 안 볼 거냐고 물었다. 뭐, 다음 기회도 있고 친구가 있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근데 알고 보니 무성영화였다. 볼 걸. 흑흑. 날 보챌 때 말해주지 ㅠㅠ..


기념품 샵은 두 곳이나 있는데 이놈들이 진짜 지들 작품 전시는 안 하고 샵에 호두까기에 한 곳은 책만 있고 한 곳은 정말 굿즈를 판다. 근데 아리에티 같은 비-하야오 작품의 굿즈는 굿즈샵에선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다행히 책은 엄청 많았는데 여기서 무려 아드만 스튜디오랑 콜라보했을 때를 기념해 찍어낸 책자도 팔고 있었다. 냉큼 샀다.


그외 수많은 아리에티 관련 책을 샀다. 종류가 많다는 거지, 여기가 특히 싼 건 아니다. 당연히 아리에티는 파는 곳이 없어서 가격을 비교할 수가 없... 이걸 알 게 된 건 교토국제만화박물관 (京都国際マンガミュージアム)에서 같은 책을 샀기 때문이다. 그로밋이 담긴 아름다운 책자를 사고나서 아리에티는 혹시 없나요..라고 물었더니 직원이 있는 책을 다 찾아줬는데 그거랑 다른 한 책 빼곤 다 샀는데 이때 알게 되었다. 이렇게 아리에티만 사가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는데 극소수지만 있다고 하더라. (!!) 더불어 친절한 직원님께선 아리에티를 재밌게 봤다면 같은 감독의 이러이러한 작품[각주:5]도 추천한다고 쪽지에 적어줬다.


몰래 부들거리며 찍어봄. 근데 복도라 찍어도 상관이 없는 듯.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외관은 천공의 성 라퓨타 풍으로 꾸며져 있다.



해가 다 지고 찍어서 노이즈가 심각하다. 사진이 망해서 언제 한번 다시 가야겠다. 박물관을 나와 직원들과 사진 찍으며 다음에 다시 온다고도 말을 했기 때문에 친목질하기 위해서라도 가야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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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열차 내엔 소부선·츄오선 각역정차 (総武線・中央線各駅停車)라고 되어 있고 앞쪽 LED엔 츄오·소부선 (中央・総武線)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본문으로]
  2. 츄오선을 탔어야 했음. [본문으로]
  3. 자신이 サボる (...)라고 말했다. [본문으로]
  4. 알바가 아니라고 단언하는 건 아니지만. [본문으로]
  5. 지난 7월 19일에 개봉했고 한국에선 3월 19일에 개봉하는 추억의 마니 (思い出のマーニ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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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AL 3.141592653589 TODAY 2.718281845904